누구나 그 뜻을 잘 알고 있는 “조삼모사”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 하니 화를 내던 원숭이들이 반대로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말을 바꾸자 모두 좋아했다는 유명한 이야기 말이다. 보통은 어리석음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이곤 하지만 그건 사전적인 의미일 뿐, 현실에서는 더 많은 양을 먼저 받는 것이 당연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시간 간격과 주는 양의 차이를 크게 하면 더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일억 원과 백만 원을 모두 받지만 하나를 받은 뒤 다른 하나를 1년 뒤에 받는다고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받을지 선택하는 문제는 어려운 고민거리가 아니다.

그것이 더 유리한 선택인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지금 하나를 받긴 했지만, 나머지를 나중에 실제로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받는 것은 확실하지만, 나중에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 확률일 뿐이다. 그렇다면 주는 사람의 처지에서 어떻게 하면 더 큰 것을 나중에 줄 수 있을까? 받는 사람이 더 불리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그것이 더는 불리한 조건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알고 보면 양자가 비슷한 가치임을 보여주든지, 다른 방식의 보상을 추가하든지, 불리한 선택이 맞지만 그것을 모르도록 속이든지, 그래도 안 되면 손해를 감수하도록 설득하든지 간에 말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변수가 바로 신뢰이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신뢰의 수준에 따라 제시할 수 있는 전략과 수긍할 수 있는 차이가 결정된다. 그런데 원래 조삼모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은 원숭이를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가 원숭이들에게 도토리 제안을 한 이유는 더는 충분한 먹이를 공급해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원숭이의 선택이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어리석음의 상징이 된 것 역시 그가 원숭이를 매우 아끼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설명이다. 둘 사이에 충분한 신뢰의 경험이 축적되었음에도 원숭이들이 그를 의심했기에 비난의 화살이 원숭이들에게 향하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아무튼, 그래도 저 둘은 합의를 했다.

고액연봉자의 임금을 먼저 줄이면 나중에 청년들을 취업시키겠다는 제안이 있다. 먼저 확실한 것을 받는 것이 합리적 선택임은 마찬가지 상황이다. 임금을 줄이는 것은 확실하지만, 청년을 취업시키겠다는 약속은 불확실하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게다가 총합이 같다는 조삼모사 도토리의 전제와 같은 구도임을 은연중에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보면, 이 조건을 낸 쪽은 청년을 그렇게까지 아끼는 것도 아니다. 신뢰는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유불리를 떠나 합의 자체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합의를 목적으로 던진 제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 합의는 어떻게 이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강신주는 조삼모사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했다.

‘조삼모사’라는 고사성어는 보통 굉장히 어리석은 사람을 지칭할 때 쓰이곤 합니다. 하지만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원숭이를 정말 좋아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안타깝게도 원숭이가 너무 많아져서 그가 원숭이들에게 줄 수 있는 도토리의 양은 하루에 일곱 개로 고정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 일곱 개를 가지고 계속 제안하면서 원숭이들과 합의점을 만들어갑니다. …… 밀어붙이지 않아요. [출처]

중요한 것은 태도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 사람은 설득하려고 했지 원숭이들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 과연 송나라 시대의 원숭이보다 더 나은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