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는 작업이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후의 모든 작업은 당연히 헛수고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올바른 문제제기라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한 후, 그것을 구체적으로 간결하게 명시하는 절차가 된다.

이 절차가 간단하면서도 당연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자주 무시되곤 한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올바른 문제제기에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는 의도적인 오해의 과정을 거쳐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엑티브엑스(Active-X)의 해법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엑티브엑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실행파일(.exe)로 대체하겠다는 발상은 멍청하거나 아니면 뻔뻔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아무래도 후자가 확실해 보인다.

엑티브엑스에 대해 제기된 문제의 본질은 “사용자의 보안과 편리성의 문제”인데 반해, 실행파일을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사람들에게 문제의 핵심은 “기존 업계의 밥줄을 끊지 않는 다른 방법”에 있었다. 애초부터 사안을 보는 관점이 달랐고, 당연히 이에 따라 문제제기의 내용이 다른 것이다. 문제제기가 올바르다고 해서 그것 자체로 문제의 해결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올바른 문제제기기 이루어지지 않으면 올바른 해법이 나올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와 관련한 재밌는 이야기를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실려 있던 책이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책을 스캔하는 과정에서 그 부분을 찾았다. 세 단락에 걸친 다소 긴 내용이지만 그대로 인용해 본다.

옛날 지금의 리투아니아에 해당하던 나라의 어느 마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병으로 앓아눕기 시작한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죽는 경우가 많았으며, 병의 증세는 환자가 죽은 듯이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이었다. 의학이 지금 같지 않아서, 매장을 하려고 해도 환자가 실제로 죽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친척이 생매장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더불어 자신들에게도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그들의 딜레마였다.

어떤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하였다. 관 속에 물과 음식을 충분히 넣고, 관 위에는 환기구를 뚫어서 (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돈이 많이 드는 방법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좀더 값이 싸고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 관의 뚜껑 안쪽에 12인치 길이의 말뚝을 달되, 뚜껑을 닫을 경우 정확히 사람의 심장을 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관의 뚜껑을 닫는 동시에 모든 불확실성은 사라지게 된다.

결국 어떤 방법을 택했는지는 이야기에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본 논의에서 선택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문제제기 방식이 다르면 해법도 달라진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첫번째 해법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어떻게 하면 산 사람을 매장하지 않을 수 있는가?) 두번째 해법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어떻게 하면 매장한 사람 모두가 죽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1

문제제기가 달라지면 해법도 달라진다는 것이 위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한 교훈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한다. 관뚜껑에 심장을 뚫는 말뚝을 부착하자고 주장한 사람들이 그것의 결과가 어떤 것일지 몰라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이 아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방법을 포기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을 때, 그들은 그 방법이 유발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몰랐을 리가 없다. 다만 현실적인 이유를 고려하여 그것을 외면하기로 모두의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사실, 대부분의 잘못된 문제제기는 무지로부터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해관계로부터 나온다. 일부의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어떤 정책이 사회 전체의 공공선을 높일 것이라고 호도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올바른 문제제기가 올바른 해법을 위한 중요 과정이기에, 올바른 문제제기는 그 자체로 해법을 향한 첫걸음이다. 그런 점에서 문제제기 과정 자체가 이미 이해관계의 싸움터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1. 닐 포스트먼 (2001) 테크노폴리, 김균 (역), pp.179-180,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