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나온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학생들에게 소개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이 요즘 여기저기서 회자하고 있나 보다. “명견만리”라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이 책의 내용을 다룬 적이 있었는데, EBS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진 모양이다. 좋은 내용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대학수업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1. 질문 없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필기 하기
  2. 교수의 입장에 맞는 답안 쓰기

저 두 가지를 철저하게 잘하는 학생들이 더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그래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학생이 오히려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적으로 맞는 이야기이다. 저런 공부방식이 더 나은 것으로 인정받는다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을 가진 학생들이 더 나은 성적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왜 학생들은 강의내용을 완벽하게 필사하는 것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저렇게 준비해야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이전보다 훨씬 더 치열해졌다. 학점이 높다고 더 쉽게 취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낮은 학점은 바로 탈락이기 때문에 학점의 중요성은 상상 그 이상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더 높은 점수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것이 전부다. 여기서 잘못된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학점에 민감해지면 평가에 대한 공정성 요구는 당연하다. 그래서 교수들은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방식을 가져오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오해의 소지가 없는 전형적인 방식의 시험과 기계적인 평가, 그리고 학교에서 정한 상대평가의 기준에 따라 그저 학점을 순서대로 나열해주는 것이 전부다. 이것 이외의 방식은 위험하고, 학생들은 이 방식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필기의 장인이 되었다. 학생의 관점에서 교수가 수업시간에 강조했던 것과 다른 내용을 답안에 작성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그 답안의 내용은 교수가 핵심만 요약 정리해서 강의했던 내용과 비교하면 다소 엉성하고 부족한 점이 발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 결국 더 낮은 점수를 부여받게 된다. 모험적인 도전에 가산점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평가의 기준이 흐트러진다.

따라서 요즘 대학생들이 저렇게 하는 것은 주어진 현실에 최대로 적응한 결과다. 다시 말하면, 저 상태는 학생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노력했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이다. 이런 상태에서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은 사과나무에서 배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창의적 사고는 이제부터 창의적으로 사고하겠다고 결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비판적인 안목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충분히 축적된 지식과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저수지에 비유하곤 한다. 일단 저수지에 물이 충분히 있어야 더 많은 물고기가 저수지에 살 수 있고, 물고기가 많아야 월척을 잡을 확률도 높아지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강의내용을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수용적 사고능력은 창의적 사고를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

학생들이 질문하지 않고, 토론식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학생들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단은 무엇을 알아야 질문할 수 있고, 자료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토론에 참여할 수도 없다. 제대로 된 토론 수업을 위해 매우 읽어야 할 자료를 제공해봤자 학생들은 아무도 읽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매주 읽은 후 메모작성을 강제하고 수업참여를 요구하면 그 수업은 어려운 힘든 수업이 되고 결국 아무도 수강 신청하지 않는다. 어렵고 힘든 수업이라고 해도 그것을 하겠다는 학생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수업을 한두 개 수강하면 그 과목만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여파가 다른 수업까지도 미친다. 이렇게 되면 치열한 학점경쟁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학생은 자연스럽게 어려운 도전을 포기하게 된다.

대학에 다니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이런저런 미친 짓도 한 번씩 해보는 것이 나쁘진 않다. 그런데 도전의 결과가 가져오는 아주 작은 손실에 대한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환경에서 왜 요즘 대학생들은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멍청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싸이코패스에 가깝다.

왜 저렇게 되었냐고? 요즘 대학생들이 다 착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그런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