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매트 피클스(Matt Pickles)가 작성한 BBC의 뉴스 기사를 번역한 것이다. 영어가 학계의 표준적인 언어로 그 위상이 공고해지면서 영어 이외의 언어로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고, 나아가 인류의 지식 축적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을 담고 있다. 언론기사이다 보니 문제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에 멈추고 있지만, 생각할 볼만한 주제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원 글이 그다지 길지 않기에 중간의 소제목은 모두 제거했고, 문단 구분은 역자가 새롭게 한 것이다. 그리고 대괄호는 역자가 임의로 추가한 부분임을 밝힌다.


영어의 확산은 지식의 상실을 뜻하는가?

매트 피클스 2016.01.14

고등교육과 연구를 위한 언어로서 영어의 지배력이 높아짐으로써 우리가 “지식을 잃고” 있는가? 국제 학술행사나 토론은 영어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연구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영어는 학습, 작문, 그리고 강의를 위한 도구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더 쉽게 협업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여기에서 잃어버리는 어떤 것이 있지는 않을까? 혹은 영어가 아닌 언어들은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독일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과학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연구자들은 주요 국제 저널에 출판하기 위해 영미권(Anglo-American) 이론들을 구독해야 한다고 걱정한다. 독일 언어학자 레이너 엔리케 하멜(Ranier Enrique Hamel)에 따르면, 1880년에는 과학저술의 36%만이 영어로 작성되었고, 1980년에는 이것이 64%까지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런 추세는 더욱 거세져서 2000년에는 학술지 인용 보고서에 등록된 저널의 96%가 영어로 쓰였다.

이런 저널에 출판하는 것은 연구비 수주와 채용 및 나아가 대학 순위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대학이 학자들의 영어 사용을 더욱 부추기는 동기를 제공한다. 이런 경향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영어로 강의하는 수업이 증가하면서 더욱 강화된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대학(Maastricht University)은 55개의 석사과정을 영어로 제공하고,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과정은 8개에 뿐이다. 흐로닝언 대학(The University of Groningen)은 현재 기본 강의 언어로 영어를 쓰고 있다.

독일 학자들이 주도하는 ADAWIS라는 캠페인은 과학의 언어로서 독일어를 지키고자 한다. 이들은 과학의 많은 분야가 각자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는 학자들에 의해 수행된 서로 다른 접근들로 인해 발전했다고 말한다. ADAWIA 의장이자 분자면역학자인 랄프 모치카트(Ralph Mocikat) 교수는 각각의 언어는 증거를 조사하고 숙고함으로써 결론에 이르는 방법으로, 서로 다른 유형의 “논증(argumentation)”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영어 논문에서 논증은 선형적이지만, 독일어 문법은 교차하고 뒤로 거슬러 참조하는 것을 쉽게 해준다”.

학자들은 문제를 풀거나 논증할 때 일상의 언어를 통해 비유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언제나 직접 번역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모치카트 교수는 말한다. “사고는 언어로 형성된다. 바로 이것이 과학의 발전에 언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유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갈릴레오, 뉴턴, 그리고 라그랑주 같은 과학자들은 각각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당시 보편적이었던 학구적인 라틴어를 포기했다. “일상의 언어는 과학의 첫 번째 원천이고, 단 하나의 언어만을 재도입하는 것은 전 지구적 과학을 다시 암흑시대로 되돌릴 것이다.”

영문 저널에 출판하기 위해서,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영미권 이론과 용어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University of Rochester)의 메리 제인 커리(Mary Jane Curry) 교수와 영국 개방대(The Open University)의 테레사 릴리스(Theresa Lillis) 교수는 영문 저널의 지배력이 남부와 중부 유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다. 그들은 영문 저널의 “관문 효과(gatekeeping)”가 이미 확립된 영미권 이론에 맞춰 연구를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연구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ADAWIS의 회원이자 켐니츠 기술대학(The Technical University of Chemnitz)의 언어학자인 윈프리드 틸만(Winfried Thielmann) 교수는 국제 저널이 다른 언어의 인용과 참고문헌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과학사는 현재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로 통찰력을 보여주는 불행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다시 쓰이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저널들이 미국의 이론들과 용어를 사용하는 논문들을 주로 인정하며, 이는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로 된 대안적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연구자들에게 유인책이 없음을 의미한다고 틸만 교수는 말한다. “제가 보기엔, 이것이 바로 지난 금융 위기에 대응하는 문제에 유럽의 경제학자들이 크게 이바지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지식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우려가 있다. 왜냐하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학자들은 자국 밖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를 숙달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서, 어떤 이들은 그들의 경력을 자국 내에서만 발전시키길 선호한다.”고 부다페스트 코르비누스 대학(The Corvinus University of Budapest)의 아니타 자토리(Anita Zatori) 박사는 말한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해외의 청중에게 말하기 위해서는 영어로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많은 사람은 이를 위한 포부나 용기가 부족하다.”

우수한 학술번역은 큰 비용이 들고, 보통 영문 저널은 다른 언어로 표현된 논문을 싣지 않으려 한다. 브라질에는 6천 개의 과학 저널이 있고, 대부분은 포르투갈어로 쓰여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오직 극히 일부만 국제 저널색인에 오른다. 이들 연구 대부분은 브라질 밖에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을 것이다.

학계에서 영어의 확장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해답은 무엇일까? 저널이 다양한 언어를 지원하고, 서로 다른 언어들로 [논문의] 요약을 출판할 수도 있다. 과학저널인 네이처는 새로운 출판물에 대한 정보를 일본어와 아라비아어로도 제공한다. 다른 이들은 하나 이상의 언어에 대한 학위과정을 제공함으로써 언어의 다양성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여러 유럽대학에서 수업이 이루어지는 유럽 고전 문화 석사학위 과정은 학생들이 다른 언어가 사용되는 최소 두 개 대학에 출석하도록 요구한다.

아예 영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거나 아니면 적어도 논문, 저서, 학회에서 영어가 사용되는 방식이라도 변경하자는 요청도 있다. 논문의 문체와 어조는 영어에만 적용되는 비유가 아니라 구체적인 예시를 쓰는 틀에 잡힌 개념으로 더 간단해질 수 있다. 국제 공용 코퍼스(corpus) 프로젝트로서 영어가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핀란드 헬싱키 대학(The University of Helsinki)의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되었고, 연구자들에게 안내하기 위해 백만 개 단어의 “학술” 영어 목록을 만들었다.

만약 영어의 확산이 계속된다면, 영어 자체가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영어로 출판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피해질수록, 다음 세대의 학자들은 언어 문제에 대해 훨씬 더 나아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마도, 오직 방문연구자만이 언급해서 [외부에는 그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수년 전 러시아에서 이미 해결된 문제의 해답을 학회에서 발표하기로 예정된 영국의 수학자와 같은 [안타까운] 이야기는 더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는, 러시아 수학자가 먼저 영어로 출판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확실히, 우리가 영어를 안 쓸 수는 없다.”고 커리 교수는 말한다. 특정 언어의 지배가 실제로 여기에 있고, 어떤 문제와 싸우는 첫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