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포항지진,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엄청난 사건이었다. 지진에 대해서는 안심하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상황을 크게 바꾼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또한, 이 지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 중 하나인 수학능력시험을 바로 눈앞에 둔 시점에서 벌어졌기에 수능연기라는 전대미문의 또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수능시험 날짜는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다른 모든 조건을 이날을 중심으로 기획하고 조율하는 그런 중요한 날이다. 그런 중요한 날이 일주일 전에 갑자기 변경된다는 것은 그동안 진행했던 계획이 어그러질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개인의 인생에 예상치 못한 중대한 변화의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수능시험 연기라는 전례가 없었던 결정을 내린 이유는 지진이 발생한 포항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입을 피해가 직접적이고 매우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충격과 물리적인 피해가 가져오는 결과의 차이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하다.
이번 수능연기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했던 공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난 결정이었기에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가장 나은 결정이라는 가정에 기초한다. 그럼 몇 가지 가정을 도입하여 실제로 이번 수능연기 결정이 갖는 의미를 수능을 강행했을 경우와 간단히 비교해보자.
- 이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포항지역 수험생은 6천 명, 그 외 지역 수험생은 59만 명이었다.
- 수능을 강행했을 때 포항 이외의 지역 수험생은 예정대로 시험이 치러지므로 예상되는 피해는 0, 하지만 포항지역 수험생은 지진피해로 인해 시험을 치르는 것 자체가 의문스러운 상황이었기에 이대로 시험이 강행된다면 최악의 피해가 예상된다. 이때의 피해를 -100이라고 하자.
- 수능을 연기했을 때 포항 이외 지역의 수험생이 받을 피해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므로 -10 정도로, 포항지역 수험생들의 피해는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지역보다는 더 클 것으로 예상하므로 -20 정도로 설정하자.
이렇게 가정하고 예상되는 총 피해의 규모를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포항 이외 수험생 590,000명 | 포항 수험생 6,000명 | 총 피해 | |
---|---|---|---|
수능 강행 | 0 | -100 | 0 x 590,000 + (-100) x 6,000 = -600,000 |
수능 연기 | -10 | -20 | (-10) x 590,000 + (-20) x 6,000 = -6,020,000 |
위 표로부터 수능을 강행하는 것보다 수능을 연기하는 결정이 압도적으로 더 큰 손해를 유발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일부 수험생들이 회복하기 힘든 극심한 피해를 볼 가능성을 고려하여 비록 더 큰 손실이지만 전체가 그 피해를 나눠서 지는 선택을 내렸다. 이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증거이다.
사회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공리주의적 사고가 갖는 가장 나쁜 점은 소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일부의 사람들만 조용히 하고 몇 명의 사람들만 무시하면 대단히 큰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성숙한 사회는 그 일부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낼 줄 알고, 그것이 갖는 가치를 이해한다.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회의 수준을 결정하는 법이다.